육아육묘/임신 육아 출산

28주 태아 심정지로 인한 중기유산, 아기를 나비동산에 보내주고..

STD. 2023. 7. 30. 08:37

오늘은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 아기의 소중한 기억을 기록에 남기고자 어디다가 글을 적어둘까 하다가, 여기에 적어볼까. .그리고 저와 같은 아픔을 가진 다른분들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해서 적게 되었어요. 이글을 쓰게 되면서 찾아보는 사람이 많이 없기를 바라면서 적어봅니다.

저도 아기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인터넷을 미친듯이 찾아보았는데,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그 글들을 보며 위안을 겪으며 저도 남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검색해서 보시는 당신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너무 자책하지 말되, 억지로 슬픔을 참지말고 울고싶은 만큼 마음껏 울고 내 아이를 위해서 충분히 슬퍼하고 다시 다음 아이를 위해서 힘내서 일어서시길 바란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떤분이 읽으실 지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당신에게 저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너무 안타깝고 우리 다시 힘내서 일어서자고 응원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다시는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저 자신에게 다짐하려고 쓰는 글이기도 해요.
기억을 되짚어 하나하나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1. 아기를 품고 있던 동안의 기억들

제가 처음에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얼떨떨 했으며, 예상치 못한 임신 소식에 철없이 징징거렸다가 그래도 우리는 결혼했고 어느정도 신혼도 즐겼으니 이왕생긴거 잘 키워보자 했었어요
유달리 몸이 약해서 임신 초기에 하혈도 했었고, 몸도 계속 안좋고 입덧도 임신 내내 했으며, 점점 힘이 없어지고.. 그래서 아기한테 엄마좀 그만 괴롭혀 빨리 나와 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아기가 별이 되었을때 이렇게 말했던 내자신이 얼마나 후회되고 과거의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엄마는 괜찮으니 건강하게만 나와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왜그랬을까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하며 옆에서 더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보니 티내지 못한채로 혼자 자책하고 마음속으로 답답해하고 눈물흘리고 마음아파했습니다. 

그래도 아기를 임신하게 되어서 초반에는 그렇게 징징거렸고 아기 첫 심장소리를 들었어도 별로 감정이 없던 저인데, 아기 태동을 느끼면서부터 점점 모성애가 생겼었나봐요. 아기를 품은 그 순간부터는 아니더라도 어느순간부터 아가를 품은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남편이랑 아가에 대한 대화도 많이 나누면서 행복했고, 정말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우리 아가 성별은 뭘까 성별을 알았을때 환희와 동시에 걱정도 함께 들었고. 아기가 태어나면 뭘할지 대화를 나누던 순간순간도 너무 행복했었다고 생각해요. 아기를 이렇게 품고 보내는 과정을 통해서 남편과 저는 더더욱 단단한 가족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많은 감정들을 새록새록 느끼게 되었어요. 
우리 아가 덕분에 나중에는 크게 너무 슬펐지만 그래도 임신 8개월 내내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커서 아가를 품길 잘했다고 생각이들어요. 


2. 유산의 징조

생각해보면 유산의 징조가 저에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놈의 약속이 뭔지, 전전날 하혈을 또 했는데 이러다가 지나가겠지 하며 약속을 당일에 취소하는건 너무너무 미안하니까 라는 멍청한 생각을 하며 거절을 못하는 제 성격이 정말 너무너무 싫었고 제 자신이 너무 싫고 자꾸 내탓인것 같고 그런 생각을 하게된 계기였어요. 정신적으로 말은 못했지만 센척했던 나를 자책하며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었고 이것때문에 정신이 흔들릴 정도였어요. 그냥 그때는 아무생각없이 약속에 나가서 밤 늦게까지 놀았던 내가 너무 나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 생각해보면 이날 몸이안좋아서 절때 낮잠같은 것 안자는데 반차를 내고 누웠는데 4시간동안 한번도 안깨고 낮잠을 자고.. 몸이 안좋았던 신호가 분명했었는데 이때 나가 놀아서 아기가 그렇게 되었나 너무너무 후회가 되고 내탓인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결국 그날 저는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고 배와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동네 병원에 갔더니, 큰병원으로 입원을 권유하더라구요.. 그렇게 큰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어요 .
처음에는 자책도 많이 했지만, 아기가 나와 인연이 될라고 했다면 이렇게 힘들었어도 태어났다. 이번에는 아직 만날 인연이 아니라 다음에 오려고 한거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자꾸 자책만해서 될일도 없고 애초에 아가가 다음에 찾아온다고 미리 알려주려고 제 몸이 그렇게 아팠던건 아닐까, 아기가 엄마건강을 생각해서 미리 알려준거같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아기가 나 다음에올라니까 엄마 얼른 병원에 가서 입원해 엄마도 아플꺼야 라고 저에게 미리 알려준건 아닌지. 아기야 엄마 살라고 너 알려준거니 너무 고맙고 눈물났지만 그래도 제가 건강하게 퇴원한것. 그래서 우리 아기를 다시한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은 것 만으로도 더이상 제탓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3. 별이된 우리 아가 

입원 후 다음날 아침... 진통검사 하러 간호사가 들어왔는데 보통 깊게 잠을 자기 때문에 눈을 잘 뜨지 못하는데 그날따라 기척에 바로 눈이 떠졌어요.
제가 열도 나고 허리도 계속 아파서, 전날도 밤에 진통검사를 하고 다음날도 아침에 가진통일 수도 있다며 간호사들이 검사를 하러 들어온거에요.  근데 간호사 언니가 뭔가 이상한지 계속 검사기계를 배에서 위치를 바꿔가면서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다른 간호사를 불러오고
왠지 여기서부터 눈물이 막 났어요.. 저는 이때부터 뭔가 불안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계속 우니까 간호사가 약하게 뭔가 맥이 잡히는것도 같으니 일단 걱정하지 말라고 간호사언니가 계속 말해주었는데, 안정되지 않도 불안감만 더더욱 커져갔어요. 어렴풋이 아기가 잘못되었다고 이때 본능적으로 느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의사까지 데려오고 30분을 진통기계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초음파기계를 가져오더니.. 갑자기 우루루 몰려왔던 의사 간호사들이 다 나가고 의사선생님 한분만 남으시더라구요.. 
그러더니 하시는말씀. 아기가 심장이 안뛰어요..라고 ...
아까 심장소리는 저의 심장소리가 잡힌거지 아기 심장소리는 아니라고 .. 그러시더라구요..
미친듯이 눈물이 났어요. 왜라는 말밖에 안나오고 갑자기 왜 갑자기 왜 이런말밖에 안나오고
너무 너무 미칠것같고 속상해서 소리지르면서 아니라고 다시 봐달라고 왜 갑자기 애기가 심장이 안뛰냐고.
병원에 있는데 왜 갑자기 병원에 오니까 애기 심장이 안뛰는거냐고 왜그런거냐고
오열을 하면서 의사선생님한테 잘못본거 아니냐고 초음파 다시 보여달라고 왜 안뛰냐고 소리지르면서 미친듯이 울었어요 ..

저는 2차 기형아 검사까지 아무런 이상이 없던, 이제 28주가 되어 1키로가 넘어 지금 조산해도 얼마든지 인큐베이터에서 살릴 수 있는 그런 상태에서 아기가 심정지가 오게 되었습니다. 며칠전에 28주가 넘고 1키로가 넘었다고 이제 낳기만 하면 되는줄 알고있었는데 너무너무 충격적이었어요 . 저에게는 임신당뇨라던지 임신중독증 등 어떠한 증상/질병도 없었기 때문에 너무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겪에 되어 정말로 너무 충격적이어서 울음밖에 안나오고 한동안 현실을 부정했던 것 같아요..
정말 그러고 나서 수도없이 피도 많이 뽑고 엄청나게 많은 검사를 했어요. 양팔이 다 멍들정도로요.. 그런데도 결국 원인을 알지 못했어요.. 이렇게 중기유산하는 경우의 대부분이 다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4. 제왕절개 / 유도 분만

정신을 못차리고 오열하고 있는 저에게 교수님이 오셔서 따끔하게 혼을 내시며 정신 차리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자책하고 있는 저를 알았는지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산모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라고. 아기가 그냥 다음에 찾아오기위해 간거고 산모의 잘못은 절때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지금생각해보면 그 말이 위안이 많이 되었어요
그러고선 조심스럽게 제왕절개를 할 것인지 유도분만을 할 것인지 물어보셨고. 다음 아기를 가질 생각이라면 제왕절개보다는 유도분만이 더 산모의 몸에 좋다고 얘기해 주셨어요. 하지만 선택은 산모가 하는 거니까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주셨습니다.
제 경우 문제는 아기가 거꾸로 있는 상태였고, 자궁경부 길이가 길어서 조건이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시도해 볼 만 하다고 하셨고, 저는 시도해 볼 수 있다면 고민없이 유도분만으로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그 당시에는제 몸보다 수술로 아기가 나오는 느낌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기가 없었던 것처럼 될 것 같고 아기를 출산하는 느낌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아기를 기억할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 내새끼 너무 불쌍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었는데, 아직 혹시 결정을 하지 않으셨다면 당신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결정을 하기를 바래요. 별이된 아기를 고스란히 진통을 겪어가며 출산을 한다는 것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하겠죠. 어떤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고 상황에 맞게 결정을 하는 것이라서, 의료진의 말을 따르되 혹시 선택이 가능하다면 내가 마음가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기가 심정지 된지 오래되면 감염 위험이 있어서 제왕절개를 해야하는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그당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고 염증수치도 굉장히 높은 상태였기 때문에 산모가 위험해 질 수도 있다고 하여, 제 뜻대로 유도분만으로진행하되 상황을 보며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면 바로 수술을 하겠다고 동의서도 작성하고 유도분만을 진행했습니다.
유도분만 내내 금식을 진행하였고 유도분만시 자궁문이 잘 열리지 않았고, 51시간동안 단 2센티도 열리지 않아서 이제는 수술을 결정하는게어떠냐 라고 하셨어요. 너무 고통스럽고 열도 많이나서 남편은 잠도제대로 못자고 제가 어떻게 될까봐 알람을 30분간격으로 밤새 맞춰놓고 제가 무사한지 확인하고 이런 시간을보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고집으로 남편을 너무 힘들게한건 아닌지 후회가 되었던 순간인것 같아요. 51시간 진통에도 교수님께 조금만 더 해보고싶다고 말씀 드렸고 30분정도 있다보니 갑자기 자궁문이 50% 이상 열려  52시간 진통 끝에 아기를 출산하게되었습니다.
서서히 경부가 벌어진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회음부가 조금 찢어졌고 . 아기가 나오고 얼마 안지나서 태반도 울컥하고 나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출산 후에 수술실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소파술을 진행하였고, 태반조직을 억지로 긁어내면 자궁에 좀더 안좋을 수 있으니 자연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일부는 남겨두었다고 하셨습니다. 퇴원하면서 자궁수축제를 처방받으면서 계속 먹으면서 나먼지는 오로로 배출을 진행하였어요.

제 욕심에 남편 맘고생을 너무 시켰지만, 지금 생각해도 다시 돌아가도 유도분만을 결정할 것 같아요. 우리 아기가 다시 오기를 바라며 그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서.  

  
5. 아기 얼굴 
출산 당시에는 교수님이 아기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출산하자 마자 바로 천에 싸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절때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안실에서 아기 얼굴을 볼 것이냐고 남편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래도 세상에 나왔는데 엄마아빠인 우리가 기억을 못하면 우리 아기는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우리 얼굴 보자고 얘기해서 애기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래에는 피가 있어서 차마 보지 못하겠어서 다 가린 상태로 아기의 얼굴만 보게 되었어요
우리 아기는 머리두상, 눈, 눈썹, 입은 아빠를 꼭 닮았고. 이마, 코, 귀는 저를 꼭 닮았더라구요
얼굴을보고 역시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다음에 다시 보자고 아이를 차마 안아보지도 못했지만 얼굴이라도 보고 보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
아이를 보는 결정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서계속 생각이 나서 더 괴로워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하고상의해보고 결정하는것을 추천하고, 제가 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다른사람에게도 이게 옳다는 것은 아니니까. 부모가 잘 생각해서 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첫날은 경황이 없어서 바로 얼굴만 보고 올라왔는데 아기 사진이라도남겨두고 싶어 다음날 다시 보러 갔어요. 하루만에 아기얼굴이 많이상한 모습을보고 너무 후회했습니다.. 혹시 아기사진을 찍을 거라면 첫날에 꼭 찍기를 바랄게요. 그래도둘째날이라도 아기얼굴을사진에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저는 차마 가지고있을 용기가없어서 현재는 남편만 찍어서 보관하고 있어요.      

 

6. 아기 보내주기.
아기가 별이 되고 나서 혹시 아기에게 어떤 이상이 있었는지 검사를 할거냐 라고 물어보더라구요, 근데 검사를 해도 이유를 모를 수가 있다고.. 처음에는 둘째를 위해서 검사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한달이 걸린다고 하더라구요.. 엄마 욕심때문에 아기가 온전한 몸으로 별이 되지 못한다는 게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어요. 그래서 다시 검사하고싶지 않다고, 온전히 보내주고 싶다고 얘기해서 아기를 화장하기로 했습니다. 중기유산 (아기 16주 이상) 부터는 화장을 해줘야 한다고하더라구요.
저희가 경황이 없을 때 병원에서 연계된 대행사를 연결해주었고, 아기는 오후 4시 이후 제일 마지막타임에만 화장을 진행한다고 해서 제일 빨리 화장할 수 있는 날이 일주일도 더 후에 있었어요.
물론 평일에도있었지만 부모가 같이 가야 하니까 주말 중 제일 빠른날짜로 잡게되었습니다.
수도권 화장터는 강남과 고양시 두곳이 있는데 우리가 아기를 보내준 곳은 고양시에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이었습니다.
화장터는 고양시에위치해 있고, 나비동산에대한 정보가잘안나오는데, 나비동산은 화장터에서 20분정도 떨어져있는 파주에 위치해 있고 용미리1묘지 라고하는 곳에 있어요.
아기가 베넷저고리, 모자, 신발, 손싸개 그리고  애착인형으로 사놓은 젤리켓 인형을 당일에 업체에게 부탁해서 관에넣어줬고, 전날 남편과 울면서 쓴 편지도 같이 넣어주고. 엄마아빠 얼굴 기억하길 바라며 저희 사진도급하게 포토프린터를주문해서 인화해서 편지지에 넣어 보냈어요. 그리고 나서 화장이 끝나고 나비정원에 가서 아기 유골을 뿌려주고 왔습니다.

유골을 어떻게 할지 많은생각을 했는데, 그냥 바다에 뿌리는 것은 불법이라고 하기도 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사유지도 없어서 고민 하던 차에, 여기 나비동산은 6살 이하의 아이들만 묻힌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언니오빠들이랑 재밌게 놀으라고 나비동산에 뿌려주고왔는데 경치도 너무좋고 조용해서 여기 뿌려주었어요.
나비동산이 정말로 경치도 좋고 조용해서 이곳에 아기를 뿌려 주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편해졌어요. 크게 멀지도 않아서 자주 찾아올 수도 있구요. 우리 아기가 나비가되어 훨훨날아 놀다가 다시 우리에게 찾아와주기를 바라면서 돌아왔습니다.  

7. 산후조리, 태아보험정리, 그날 이후 한 일들

첫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단유에 대한 얘기에요.
저는 출산후에 바로 단유약을 먹었고, 동시에 압박붕대를 하였어요. 출산 후 또는 중기유산에 흔히 발생한다는 젖몸살은 다행히 오지 않았습니다. 출산 후 보통 미역국을 많이 먹어라 라고 하는데, 저도 병원에 있어서 당연히 미역국이 엄청많이 나왔어요. 국물은 먹지말고 미역만 먹으라는 엄마 말에 국물은 먹지 않고 미역은 열심히 먹었습니다. 입맛이 없었지만 둘째아기를 빨리 보고싶다는 생각에 이를 꽉 물고 열심히 먹었어요 밥도 원래 한끼밖에 먹지 않았는데 아침점심저녁 세끼를 꼬박꼬박 넘어가지 않더라도 꼭 챙겨먹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나서는 굳이 꼭 미역국을 먹지는 않았어요. 남아있는 철분제를 챙겨먹긴 하되, 요즘 유행하는 오쏘몰 이뮨 종합비타민도 먹고, 밥은 일반식으로도 많이 먹었어요. 내가 먹고 싶은 것, 입에 당기는 것 위주로 많이 먹었습니다.
물론 뭐 미역국이 좋다고하는데 입맛이 없어서 별로 먹지 못하는 것 보다는 그냥 일반식으로라도 많이 먹자 먹고 기운 내자 라고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밥이 잘 안당겨서 버블티도 많이 마시고 그냥 그릭요거트 같은거라던지 샐러드로 한끼 먹은 적도 많았던 것 같아요. 다만 아침 점심 저녁 꼬박꼬박 챙겨먹으려고 노력 많이 했고, 돈 생각하지 않고 배달음식 많이 시켜먹었어요. 
친정에 있는 동안에는 친정엄마가 해준 밥. 그리고 산후 도우미 이모님이 오실 때는 이모님이 해준 밥. 그 외에는 배달음식 또는 외식으로 모두 해결했습니다. 최대한 건강한 상태로 다시 임신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두번째로는, 내몸도 소중하니까, 산후조리에 대하여 얘기해보고자 해요.
산후조리원에 일주일이라도 들어가겠다고 얘기했는데 업체에서도 그렇게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가족들이 많이 반대했어요.
저는 내몸챙기는게 우선이다라고 생각해서 조리원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아기를 봐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 많았지 산모를 위해서 해주는 것은 크게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조리원에서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해놓고 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냥 친정엄마 집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엄마 집에서 일주일 요양 하고 아무래도 내집이 제일 편하다고 집으로 왔어요.
정부에서 16주 이상 유산도 국가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산후도우미 업체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총 2주를 이용했는데요.
물론 아기가 없기 때문에 이모님이 많은 것을 케어해 주실 일은 없을 거에요. 그래도 조리를 잘 해야 하니까 이모님을 불러서 아침점심저녁 잘 챙겨먹고, 집안일 하지 않고 그렇게 2주를 지냈습니다. 아기도 없이 이모님이랑 계속 같이 있는 것은 솔직히 할일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저는 수다떠는 것을 딱히 즐겨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서도 잘노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모님을 매일 일찍 보내드렸어요.
가사도우미 업체도 알아보니 2시간에 4만원이었고, 비용적으로는 그게 그거였는데 이모님이 케어해주시는 시간이 훨씬 길었기 때문에 (8시간) 그냥 산후도우미 업체를 쓰는 것도 저는 추천해요.
아무튼 이모님이 청소 빨래 다 도와주시고 식사도 아침점심으로 두끼 차려주시고 일이 대강 끝나면 2-3시쯤 되길래 그냥 일찍 퇴근하시라고 말씀드리고 그렇게 하니까 좋더라구요~ 
얘기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 있다면 담소라도 나누면 되니까 이모님 도움 받는 것을 저는 추천드려요. 일을 안해도 손목이 시큰시큰하고 나중에는 허리나 골반도 아프고 애기도 없어서 아무것도 안하는데도 몸이 조금씩 아프고 그러더라구요. 

우리 아가를 위해 들었던 태아보험 계약해지, 그리고 저의 보험 청구 등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해요.
저는 태아 보험을 자녀종합보험과 실비보험 두가지를 들었는데요.
실비보험은 사산확인증을 제출하면 바로 해지를 해주었어요. 자녀종합보험 같은 경우에는 보통 태아가 출생하지 못하고 사망하면 해지를 해주는 것 같았어요. 
제 보험같은 경우에는, 저는 우선 아파서 먼저 입원을 진행했기 때문에 입원특약이 들어가있는 보험이 있고 실비도 있는데 보통 임신출산 관련은 실비청구가 어렵다고 들었어요. 얼마 안되는 금액이지만, 저는 사실 여태 한번도 아파서 병원에 가도 실비청구를 해본 적이없거든요.. 그래도 이번에는 그냥 해볼려고 여러가지 알아봤습니다. 일단 저는 출산을 하려고 입원한 것이 아니라 몸이 안좋아서 입원을 진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비청구를 하려고 진단서를 재 요청 해 두었는데, 만약 병원 진료가 있으시다면 보험도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사전에 충분히 알아보시고 진단서라던지 병원에서 필요한 서류를 미리 떼 놓으시는 것을 추천해요. 안그러면 여러번 병원에 또 방문해야하니까요.

미리 장만해 놓은 아기용품에 대해서, 이건 그냥 단순히 제가 하고싶은 대로 한거라 저는 어떻게 했는지 적어볼께요
아기가 그냥 이제는 태어나는 날만 남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저는 미리 장만해 놓은 아기 용품이 제법 있어요. 유모차도 큰맘먹고 디럭스로 구매했고, 카시트는 이미 차에 장착해두었고, 아기 침대나 젖병소독기도 샀으며. 그 외에 자잘하게 젖병이라던지 세제라던지 거의 300만원 이상은 썼던 것 같아요. 아기 옷들도 당연히 있구요. 친구들이 타이니모빌이라던지 아기장난감, 옷 같은것도 미리 다 보내주어서 아기용품이 정말 집에 많았어요.
퇴원하고 친정집 다녀왔다가 집에왔는데 아기용품이 정말 가득가득해서 남편이랑 엉엉 목놓아 또 한참을 울었어요.
그래도 저희는 아기 용품 보면서 충분히 슬퍼하면서 아기를 마음에 잘 묻고 잘 보내주었어요. 
어떤 분들 보면 아기용품 보면 계속 생각날까봐 다 당근에 판매한다던지, 안보이는데 넣어두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은데, 저는 다시 찾아올 그아이를 위해서 그냥 가지고 있기로 결정했습니다. 유모차도 환불하려고 했었으나 그냥 가지고 있기로 했어요. 
카시트랑 유모차는 그래도 창고에 넣어두고, 다른 아기용품들은 서랍을 사둔곳에 한곳에 넣어두었어요. 둘째를 다시 갖기로 으쌰으쌰 하기로 했기 때문에 언제 둘째가 찾아오든 잘 간직했다가 그 아이에게 줄거에요.
다만 젤리캣 애착인형하고 제가 한땀한땀 DIY키트 사서 바느질했던 아기 베넷저고리와 신발 등은 화장할때 심심하지 않고 춥지 말라고 같이 넣어두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가장 슬펐던 초음파 앨범이랑 산모수첩, 그리고 베이비페이스 사진.
저는 초음파앨범을 그대로 간직하기로 결정했어요. 산모수첩에 병원에서 적어주었던 기록을 다 오려서 초음파 앨범 남은곳에 다 넣어놨어요. 그리고 우리 아기랑 추억이 있었던 날, 그리고 보내야만 했던 날 들을 하나하나 기록한 달력도 같이 넣어두었습니다. 베이비페이스 사진도 사실은 신청을 안했다가 나중에 집에와서 신청했어요. 그아이와 관련된 모든것을 기록하고 싶었거든요. 
태교여행갔던 기록.. 그리고 주수 사진은 따로 없지만 출산 예정 100일을 남겨두고 집에서 간단히 찍었던 배나온 사진 모두 행복했어요  

이별을 각자 기록하거나 간직하는 모습은 모두 다를거에요,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부부는 그렇게라도 그 아이가 세상에 나왔었다는 기록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조금 질척거리는 부모로 남기로요. 하지만 어떤 방법이든 정답은 없기 때문에 흔적을 남기지 않아도 나만의 방식으로 그 아이를 기억하시기를 바라요. 
 

8.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신 분들께 하고싶은 말
저도 수없이 많이 들었던 말이지만 하고싶은 말은 당신탓이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니다 라는말이에요.
분만실 간호사님들 너무 따스해서 감동스러웠고 너무감사했고, 그리고 수도없이 해주신 산모 잘못이 아니라고 손잡고 위로해 주셨던 말에 많이 위안을 얻었어요.
자책해봤자 우리 아기만 더더욱 나쁜엄마를 둔 불쌍한 아기가될 뿐이라고 생각하고 더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아기가 엄마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더 좋은모습으로 찾아오려고 잠시 돌아올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아기를 좋은 곳 에보내고 와서 훌훌털고 다시 으쌰으쌰 살아보자 남편이랑 다짐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나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물론 제 얘기가 들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주변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먼저 갔을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도 자책보다는 행복한 기억을 더 많이 떠올리며 잘 보내 주도록 해요.
무엇보다 우리의 아이는 정말로 이렇게 사랑해주는 부모를 만나 최고로 행복했을 거에요
우리 다들 잘 이겨내서 다시 그 아이를 만나는 날까지 건강히 잘 지내보도록 해요.
댓글을 자주 보지는 못할테지만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남겨주세요. 제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